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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리적 의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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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12-03 14:24:18
합리적 의심
믿음과 의심이 같은 하늘에서 함께 살 수 없는 원수처럼 사이가 나쁠 것 같다. 의심은 믿음을
더 이상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고, 믿음은 일말의 의심이 일어나지 않아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 하나의 믿음 체계만이 가능하다면 믿음과
의심의 원수 관계가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사람의 믿음 체계는 역사와 시대의 조건과 더불어 변화한다. 믿음의 변화가 일어나려면
믿음은 자신의 전체 중 일부를 의심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한다. 의심으로 인해 믿음 체계에 균열이 생기면서 새로운 믿음 체계가 싹이 틀 수 있는
가능성과 영토를 가지게 된다. 이 때 믿음과 의심은 원수가 아니라 쌍둥이라고 할 수 있다.
믿음 체계가 확고하게 서 있을 때 믿음은 의심을 철저하게 배제하는 만큼 자신의 건강성을
유지할 수 있다. 반면 믿음 체계가 변화할 때 믿음은 의심을 단호하게 수용하는 만큼 새로운 틀을 갖출 수 있다. 따라서 의심은 불순한 동기와
결합되는 음모와 다르다. 의심은 믿음 체계에 묻어 있을지 모르는 얼룩을 떼어내고 그 안에 들어 있는 독단을 파헤치기 위해 근거를 요구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합리적 의심’이라 부를 만하다.
합리적 의심은 형사소송법에서 감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명백한 사실에 바탕을 둔 의심보다 훨씬
범위가 넓다. 경찰이 의심할 만한 징후가 있을 때 거리에서 사람의 신분증을 요구하고 자동차를 멈춰 트렁크를 열어 본다. 이 과정도 경찰의 합리적
의식(reasonable suspicion)에 바탕을 두고 있다. 반면 공자의 합리적 의심은 어떤 주장을 사실로 믿게 할 수 있는 물질적
증거만이 아니라 언어적 논증을 요구하는 것이다.
이로써 의심은 상대의 파멸을 의도하는 적대적 공격으로 오해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합리적
의심이 남아 있는 한 믿음은 믿음일 수가 없고, 그 믿음에 따라 판단을 내리고 행위를 할 수가 없다.
공자는 자장으로부터 관직 생활을 하는 자세에 대한 질문을 받고서 제일 먼저 합리적 의심을
강조했다. 공직은 한 번 결정이 내려지면 그에 따라 대민 업무가 시작된다. 특히 한 번의 정책적 결정으로 연관되는 사람이 아주 많은 경우 합리적
의심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고 일을 추진하면 엄청난 후과를 불러들이게 된다. 예컨대 연말정산, 공무원연금 등의 개정을 두고 면밀한 검토와 충분한
논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계획을 발표했다가 후폭풍이 일어나 방침이 재론되기도 했다. ‘궐의(闕疑)’와 ‘궐태(闕殆)’의 합리적 의심을 한다면
하나의 정책이 논란을 종식시키지 못하고 새로운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지 않을 것이다.
- 신정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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