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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코너 [ 존치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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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12-05 06:46:17

팔코너 [ 존치버 ]
소설의 주 무대는 미국 동부의 교도소 팔코너(그런 이름의 감옥이 실제로 존재하는지는
모른다.) 주인공은 대학교수였던 사내 패러것이다. 그는 구금된 인간이다. 마약중독자로, 형을 살해하고서 독방에 수감되어 있다. 감옥 안에서도
그는 여전히 약 중독 상태다. 감옥에 갇힐 때 정신과 전문의들로부터 진단을 받았으며 이를 바탕으로 국가는 패러것에게 매일 몇 알의 약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소설은 패러것의 현실인 감옥 안 세계와, 과거 기억인 감옥 밖 세계를 오가며 전개된다. 때론 자유인과 비자유인의 접경지대를
지나가기도 한다. 이를테면 아내와 면회장에서 만나는 장면.
(…) 패러것의 얼굴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방문을 어쩔 수 없이 수락한 사람처럼
딱딱해져 있었다. “안녕, 여보.” 패러것이 마샤에게 소리쳤다. 마치 기차에서, 배에서, 공항에서, 진입로 입구에서 혹은 여행의 끄트머리에
이르러서 소리치며 인사하듯이.
(…)
“이혼할 거지?”
“지금은 아냐. 현재로선 변호사와 단 한마디도 나누고 싶지 않아.”
“이혼은 당신의 특권이야.”
“알아.”
(…)
“여기 있는 사람들은 어때?” 마샤가 물었다.
“많이 만나진 못해.” 패러것이 대답했다. “식사 시간에만 보는데 그때도 대화는 금지돼
있어. 알겠지만 나는 F동에 있어. 그곳은 뭐랄까, 일종의 잊힌 장소지. 피라네시의 그림에서처럼 말이야. 그래서 그랬는지 지난주 목요일엔 저녁
식사도 주지 않더군.”
“독방은 어떻게 생겼어?”
“가로 십이, 세로 칠 피트 정도야.”
- [팔코너], 20~22쪽
그는 다른 모든 죄수들처럼 스스로를 ‘형제를 살해했다는 죄목으로 부당하게 갇힌’ 교도소
침대의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마흔여덟 살의 남자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그는 하얀 셔츠를 입고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는 평범한 사내이기도 하다.
팔코너는 일상적인 인권 유린이 아무렇잖게 자행되는 폐쇄 공간이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몰래 고양이를 키우고 라디오를
만들어 다른 교도소의 폭동 소식을 듣고 타인을 질투하거나 연민한다. 패러것의 실존을 위협하는 것은 사랑과 성욕과 고독이며, 감옥 밖의 생활이라고
해서 더 나았던 것은 아니다. 우리는 언제나 억압받고 소외되고 고통스럽고 우스꽝스럽다. 그럼에도 어쨌거나 오늘을 살아내는 것. 존 치버의 다른
소설 속 인물들이 그러하듯이. 나와 당신이 그러하듯이. 이 지점에서 패러것은 한 명의 구금자를 넘어 인간으로서의 보편성을 가지게 되고, 팔코너는
여간해선 도망갈 데 없는 이 세상 그 자체가 된다.
마지막에, 패러것은 죽은 동료 대신 자루에 담겨 탈옥을 시도한다.
패러것은 (…) 버스에서 인도로 발을 디딜 때 추락에 대한 공포가, 또 그와 비슷한 다른
모든 두려움이 사라졌음을 느꼈다. 패러것은 머리를 높이 쳐들고 등을 꼿꼿이 편 다음 힘차게 걷기 시작했다. 기뻐하라. (…) 마음껏
기뻐하라.
- [팔코너], 238쪽
소설은 거기서 끝난다. 패러것의 탈주는 성공했을까, 그렇지 않았을까. 어떻게 되었더라도,
살아 있는 한 고통은 영원히 그의 곁에 머물 것이다. 그것이 모든 훌륭한 소설들이 우리에게 알려주는 공통의 진실이다.
겉으로는 부족할 것 없어 보이지만 비정상적이고 비윤리적인 가족관계―배 속의 아들을
낙태시키려고 했으며 본인 자신도 툭하면 자살 소동을 벌이던 아버지, 불같은 성격에 생활고로 집 앞에 주유기를 설치해 기름을 팔면서도 드레스를
포기하지 못했던 허영심 강한 어머니, 어려서부터 틈만 나면 동생을 죽이려 들었던 알코올중독자 형, 파탄을 눈앞에 둔 결혼생활 속에서 균열하는
인간의 정신세계를 그려낸 20세기 걸작의 하나. 교도소라는 폐쇄된 공간을 무대로 구금이라는 물리적 고통이 낳은 정신적 소외와 그 절망의 심연
속에서도 새로이 잉태되는 희망과 삶에의 긍정이 아름답고 절제된 언어로 구현된 작품이다.
존 치버
‘교외의 체호프’라 불리는 20세기 영미문학의 거장. 1912년 매사추세츠 주 퀸시에서
태어났다. 18세 때, 세이어 아카데미에서 제적당한 경험을 소재로 한 단편 [추방]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다양한 잡지에 글을 썼으며, 영화
시나리오 작가 및 대학 방문교수 등으로도 활동했다. 교외에 사는 저소득층과 자신의 경험을 녹여낸 첫 작품집 [어떤 사람들이 사는 법]을 필두로
[기괴한 라디오 그리고 다른 이야기들] [여단장과 골프 과부] 등 여러 작품집을 펴내면서 작가로서의 지위를 확고히 했다. 1957년 첫 장편
[왑샷 가문 연대기]로 전미도서상을, 속편 [왑샷 가문 몰락기]로 윌리엄 딘 하우얼스 메달을 수상했고, 1978년 발표한 [존 치버
단편선집]으로 퓰리처상과 전미비평가협회상, 전미도서상을 수상했고, 1982년 4월 암으로 사망하기 6주 전 미국 문학예술아카데미로부터 문학 부문
국민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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