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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가리 무타 마타이

    1
    나유정(@tjsdlswkd1)
    2017-03-19 17:08:22




왕가리 무타 마타이
 
 
왕가리 마타이는 영국의 식민통치 시기에 케냐 산 기슭에 자리 잡은 니에리 지역의 이히테
마을에서 태어났다. 해발고도가 5,199m로 아프리카에서 킬리만자로 산 다음으로 높은 케냐 산은 원주민인 키쿠유족에겐 그들이 숭배하는 신
응가이(Ngai)가 거하는 성스러운 산이다.
 
케냐 산 인근 지역은 수량이 풍부하고 기후도 쾌적해 일찍부터 백인들이 정착하기 시작했다.
마타이가 속한 키쿠유족은 조상 대대로 살아오던 땅을 수탈당했고, 많은 이들이 백인 소유 농장의 임금노동자가 되었다. 그녀의 아버지도 백인
농장에서 일을 했다. 그러나 가족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아 남은 가족들은 니에리에서 살아갔다.
 
토지를 수탈당한 케냐의 최대 종족인 키쿠유족은 반영투쟁을 전개했다. 이 당시 청소년기를
보내고 있던 마타이는 가톨릭 선교회가 운영하던 학교에서 공부했기에 마우마우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었지만 케냐에 비상사태가 선포되어 거주와 이동의
자유를 제한받았기에 식민주의의 본질을 꿰뚫어 볼 기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영국 식민통치하에서의 억압과 수탈은 마타이에게도 상당한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그녀에게 교육받을 기회가 주어진 것은 당시로선 커다란 행운이었다. 여성들의 교육에 무관심했던
사회 분위기를 감안하면, 케냐에서 초중등 교육을 받고 미국과 독일 유학의 기회를 얻은 것은 세계를 바라보는 넓은 시각을 형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마타이에게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다녔다. 중동부 아프리카 여성 최초로 박사학위를
받았고, 대학에서 동물해부학을 강의한 최초의 동아프리카 여성이기도 했다. 1976년 나이로비대학교의 동물해부학과장을 역임했으며 1977년에는
같은 학과의 부교수가 되었다. 동아프리카 지역에서 이와 같은 자리에 오른 여성은 마타이가 최초였다. 당시만 해도 남성 중심적 문화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에 여성으로서 그녀가 이룬 성과는 괄목할 만한 것이었다.
 
더 나아가 2004년에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최초의 아프리카 여성이 되었다. 그 당시만 해도
노벨평화상 또한 서구와 남성 중심적이었다. 이처럼 그녀는 남들이 쉽사리 가지 못하는 길을 찾아가는 개척자의 삶을 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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