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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나 네트렙코

    1
    나유정(@tjsdlswkd1)
    2016-04-25 11:45:08








안나 네트렙코
 
 
"저는 관객을 사랑해요. 그들을 웃고 울게 하고 싶어요. 제가 노래하는 이유는 바로
그거예요."
 
오페라에 전혀 관심 없던 남자들이 어느 날부터인가 카오디오로 오페라 아리아를 듣기 시작한다.
그러다가 오페라 공연 실황 DVD를 보며 빠져들더니, 급기야는 뉴욕 메트로폴리탄 극장 또는 잘츠부르크 페스티벌로 오페라 공연을 보러 날아간다.
뇌쇄적인 외모와 관능적인 음색으로 무대 위에서 달리고 구르고 드러누워 노래하는 소프라노 가수 하나가 전 세계에 불러일으킨 이 놀라운 반향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스크바나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사는 사람들이 '러시아의 리비에라'라고 부르는 흑해 연안의 매혹적인 도시
크라스노다르. 바로 현재 세계 최고의 인기 오페라 가수로 군림하고 있는 소프라노 안나 네트렙코(Anna Netrebko)가 1971년 9월
18일에 태어난 곳이다.
 
지질학자 아버지와 전화국 엔지니어 어머니의 둘째 딸로 태어난 안나는 어린 시절과 청소년기를
아주 행복하게 회상한다. "주말마다 집엔 손님이 넘쳐났어요. 친구들 또는 친척들과 늘 함께 요리하고 웃고 떠들었죠. 지금도 고향집에 가면 그
친구들과 영화 보러 가거나 클럽에 가서 놀아요." 안나는 서구에서 흔히 선전하듯 '재투성이 아가씨였다가 왕자를 만난 신데렐라'가 아니었고,
상당히 유복한 환경에서 자라났다. 다섯 살 위인 미모의 언니는 덴마크에서 모델로 활동하고 있다. 어릴 때 셰익스피어의 연극 [오셀로]를 본
안나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셀로가 죽어가는 연기에 완전히 반해, 어떤 형태로든 꼭 무대에 서고 싶다는 꿈을 품게 되었다고 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시작했던 1985년, 안나는 연극배우가 될까 성악가가 될까 진로를
고민 중이었다. 오페라하우스와 콘서트홀, 오케스트라와 음악대학이 있는 도시 크라스노다르에서 하루 종일 노래를 부르고 다니는 10대 소녀의 재능은
금방 전문가의 눈에 띄었다. "언제까지 되는 대로 노래를 부를 거니? 넌 성악 테크닉을 제대로 익혀야 해." 경험 있는 음악교사에게 다섯 달을
배운 뒤 안나는 레닌그라드 림스키코르사코프 음악 전문대 입학시험에 합격했다. 10월 혁명 이후 레닌그라드로 불렸던 이 도시는 1991년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다시 상트페테르부르크라는 옛 이름을 되찾았다.
 
마지막까지 연극과와 음악대학을 놓고 결단을 못 내리던 안나는 연극과 입학이 하늘의 별따기라는
친구들 얘기에 얼른 음대에 지원서를 냈다. 음악 전문대는 콘서바토리보다 입학조건이 까다롭지 않았지만 그만큼 수준은 떨어졌다. 입학하자마자 대학
오페라 무대에서 두각을 나타낸 안나는 두 학기만에 림스키코르사코프 콘서바토리로 학적을 옮길 수 있었다. 무대를 열망했던 안나는 복식사, 펜싱,
안무 수업에도 열성이었지만, 마린스키 극장에 무턱대고 찾아가 '무대 위에 그냥 서 있는 역이라도 시켜달라'고 간청해 거대한 '불새'의 한쪽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고, 오로지 오페라 연습을 구경하기 위해 극장을 청소하는 아르바이트를 하며 하루에 10시간씩 리허설을 지켜보기도 했다. 안나가
후에 성공을 거두자 서방 언론은 '청소원에서 프리마돈나로: 세계 오페라 계의 신데렐라 탄생'이라는 식으로 이 스토리를 대서특필했다.
 
지휘자 발레리 게르기예프와의 만남은 안나 네트렙코의 운명을 결정지었다. 그는 80년대에
상트페테르부르크 키로프 극장(마린스키 극장의 소련 시대 이름)을 토대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부단한 노력과 야망으로 구세대 지휘자들을
뛰어넘은 게르기예프는 자신과 호흡을 맞출 젊은 오페라 연출가와 가수들을 원했다. 소련 당국에서 서방세계 여행 허가를 얻은 그는 1991년
뮌헨에서 무소륵스키의 [보리스 고두노프] 초연판을 공연했고 유럽 극장들은 다투어 그를 초청했다. 1993년에 글링카 콩쿠르에서 우승한 안나는
게르기예프의 인정을 받아 이듬해 그가 이끄는 마린스키 극장 전속가수가 되었고 [피가로의 결혼]의 수잔나 역으로 1994년 마린스키 무대에
데뷔했다. 이 프로덕션은 같은 해에 독일 슐레스비히 홀슈타인 페스티벌에서도 공연되었고 안나 역시 이 기회에 독일 오페라 무대에 데뷔했다.
 
1995년 마린스키 극장은 샌프란시스코 극장에 초청되어 글링카의 [루슬란과 류드밀라]를
공연했고, 류드밀라 역으로 첫 미국 오페라 무대에 데뷔한 안나를 당시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지는 이렇게 평했다. "그녀는 모든 것을 다 갖춘
가수다. 경탄할 만큼 맑은 음색, 정확성, 유연성, 엄청난 역동성과 풍성함, 상상력, 이해력, 정신성, 그리고 압도적인 카리스마까지 갖추고
있다." 스물네 살짜리 오페라 가수가 이런 평을 얻은 예는 당연히 드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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