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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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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04-27 20:29:43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는 릴케를 대선배로 흠모하고 있던 프란츠 크사버
카푸스(1883∼1966)가 릴케와 주고받은 편지들을 20년 동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다가 릴케가 죽은 후 바이마르에 설립된 릴케 문서박물관에
기증한 것을 1929년 인젤 출판사에서 출판한 것이다.
적성에 맞지 않은 진로를 두고 고민하는 후배에게 선배로서 성심성의를 다해 조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카푸스에게 첫 답장을 쓰던 당시 릴케 자신이 그의 인생과 문학에서 중요한 전환기를 맞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은 단순한
조언에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거기에는 릴케 자신의 새로운 인생관과 문학론에 대한 모색 과정의 고백도 들어 있다. 다음과 같은 릴케의 글이 그런
사정을 암시하고 있다.
당신을 위로하려는 이 사람이 때때로 당신의 기분을 좋게 해주는 단순하고 조용한 말이나
하면서 아무런 어려움 없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의 삶에도 많은 고생과 슬픔이 있으며 당신의 삶보다도 훨씬 뒤처져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런 말을 찾아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생과 슬픔’은 바로 생계에 위협을 느낀 릴케가 막 첫돌이 지난 딸을
장모에게 맡기고, 아내와도 별거하며 원고료를 위해 ≪로댕 평전≫을 집필하며 파리에 머물고 있는 자신의 상황을 투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고독을
강조하고, 글쓰기를 내적 필연성에서 찾아낼 것을 권유하는 것도 상대방만을 위한 충고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생존 조건을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스스로에게 다짐하는 의미도 있었다. 그 내용이 오늘날의 젊은이들에게도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는 데에 큰 의의가 있다. 그리고 그것은
무엇보다도 삶과 예술에 대한 진지하고 엄격한 자세라고 요약할 수 있다.
첫 번째 편지에서 릴케는 예술 작품에 대한 비평의 한계를 지적한다. 모든 진정한 예술 작품은
비평이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차원에서 고유한 존재의 법칙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오직 사랑하는 마음만이 그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어쩌면 릴케를 예술지상주의자로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예술과 인생의 필연적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릴케
자신이 카푸스의 습작에 대한 직접적인 평가를 유보한다고 하면서도 부족한 점을 짚고 넘어가는 것도 바로 그런 필연성에 기준을 두고 있으며, 그런
지적을 통해 시의 성공 여부를 외부의 평가에서 찾으려는 카푸스의 태도를 교정하려는 데에 그 진정한 의도가 있다. 여기에는 물론 그 자신 아직
미숙했을 때 프라하의 좁은 문단에서 마구 작품을 발표했던 과거에 대한 반성의 뜻도 숨어 있다. 이 편지를 쓸 무렵 릴케는 이미 ≪로댕 평전≫을
발표했으며, 로댕에게서 배운 ‘끝없는 작업과 인내’라는 자세와 관련해서, 시는 단순한 감정의 표현이 아니라 체험이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던
것이다.
외부의 평가를 기대하지 말고 자기 자신의 내면으로 눈길을 돌려야 한다는 릴케의 입장은 각자의
고유한 삶에 대한 무한한 긍정과 기대에서 오는 것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습적 통념을 떠나 각자의 내면적 필연성을 삶의 지표로 삼으라는 요청으로
나아간다. 고독은 그런 필연성에 도달하기 위한 집중과 인내의 과정이며, 또한 이제까지 체험해 보지 못한 깨달음을 통해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는
변용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고독한 인간’은 실존의 근본조건을 자신의 내면에서 성찰하고, 어떤 어려움이 닥쳤을 때도 그 해결을 인습이나 타인의
견해에 의존하지 않으며, 무한히 열려 있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으로 꿋꿋하게 버티면서 고유한 삶의 근거를 스스로 찾아나가는 능동적
인간이다.
모든 문제를 가볍게 넘기려 하지 말고, 어려운 상황을 끝까지 참고 견디라는 릴케의 요청은
결국 삶의 모든 부정적 조건을 받아들이는 운명애로 이어지며, 그것은 거의 20년 후에 완성될 그의 ≪두이노의 비가≫에서 죽음도 삶의 일부로
인식하는 현세 긍정의 대주제로 나타난다. 이와 관련하여 흥미로운 것은 ‘미래의 신’과 ‘외로운 아이’의 관계에 대해 릴케가 독특한 견해를
나타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신은 인간의 손쉬운 의지처가 아니며, 오히려 고독 속에서 이루어지는 무수한 내면의 작업을 통하여 미래에 완성시켜야 할
최후의 존재라는 것이다. 그리고 어른들의 세계에 끼지 못하고 낯선 사물에 둘러싸여 있는 어린아이야말로 “슬프고도 행복한” 내면의 작업을 통하여
미래의 신을 짓고 있는 중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릴케 자신의 ‘잃어버린 어린 시절’에 대한 체험이 긍정적인 의미로 해석되고 있음을 보는
한편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는 워즈워스의 역설적 시어가 릴케의 문맥에서 다시 그 진실성을 드러내는 매우 인상적인 경우를 본다.
고독과 성숙과 사랑, 이 세 가지 의미의 긴밀한 연관 관계야말로 ≪젊은 시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릴케가 말하고자 하는 내용을 떠받치는 중심 주제다. 고독은 내면 성숙을 위한 집중의 순간이고, 사랑은 내면 확장의 계기이므로, 서로
상대방의 고독을 지켜주는 사랑을 통하여 자연을 포함한 세계 전체와 내적으로 소통하는 창조적 인간, 그것이 릴케가 카푸스에게 권하고 스스로도
추구한 목표였던 것이다.
릴케의 ≪젊은 여성에게 보내는 편지≫는 ‘시인과 젊은 여성’의 관계에서 흔히 추측할 수 있는
로맨틱한 꿈과 연애 감정 교환의 기록물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혼란한 역사의 격동기에 극심한 궁핍 속에서도 어떻게든 삶의 한 귀퉁이를 지탱해
보려고 애쓰던 한 여인에게 보내는 시인의 위문편지일 뿐만 아니라, 동시대를 살아가며 삶의 절망적 의미에 공감하는 고독한 자의 동지적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릴케에게 첫 편지를 쓸 무렵 리자 하이제는 남편에게 버림받고 두 살짜리 아들과 함께 나날의
끼니를 걱정하며 사는 스물여섯 살의 여인이었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꿈 많은 소녀였던 그녀는 스무 살 되던 해 엄격한 부친에게 자립 의사를
거절당하고 매까지 맞자 가출해서, 연인인 미술학도 빌헬름 하이제에게 간다. 음악과 미술을 사랑하며 니체, 메테르링크, 입센의 작품 등을 즐겨
읽는 예술가 한 쌍은 결국 혼인을 맺기에 이른다. 부친이 살림집까지 마련해 주었으나 워낙 어려운 세월이었던지라 몹시 형편이 궁색했고, 일거리를
찾아 나선 남편이 집을 비우는 날이 많았던 이 혼인은 3년 만에 파탄이 이른다. 무책임한 남편에게 버림받은 리자는 어린 아들의 양육을 혼자 맡게
되었지만 모든 것을 감수하고 자식의 장래를 위해 남편의 성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렇게 고달픈 상황에서 리자 하이제는 당시 출간된 릴케의 ≪형상시집(Buch der
Bilder)≫을 접하고 크게 위안을 받았다. 그녀의 첫 편지는 그 위안에 대한 조심스러운 고마움의 표시였다.
“저는 차라리 아무 말도 없이 선생님의 시들이 지닌 음악에 만족하는 것이 좋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시편들 안에는 쇼팽의 야상곡이 지니는 달콤함과 베토벤의 라르고 악장이 지니는 억제된 힘이 울리고 있습니다. …선생님의 시편들은
마치 잃어버렸던 무언가를 다시 찾은 것처럼 저를 감동시킵니다. 풀 수 없는 의문과 불확실한 대답이 마음을 완전히 달래지는 못할지라도, 선생님의
예술이 주는 순수한 도움 덕분에 저와 어린 자식만이 함께 살아가는 그 깊은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정말 아주 대단한
것입니다. 선생님의 시편들이 말하고 있는 그 ‘경험들’, 그리고 저의 가슴이 기꺼이 받아들이며, 만족할 만큼 큰 위안을 주는 그 경험들에 대해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릴케는 이렇게 조심스러운 감사의 편지를 예사롭게 받아들이지 않고, 길고 상세한 답장을
보냈다. 그는 스스로 그 이유를 리자 하이제의 편지에서 느낀 개인적인 신뢰와 호소력 때문이라고 밝히고 있는데, 사실 “깊은 고독” 속에서 “어린
자식”을 데리고 혼자 사는 여인의 처지, 그리고 자신의 시구에서 쇼팽과 베토벤의 음악이 지니는 울림을 읽어낼 줄 아는 여인의 감수성은 릴케의
꾸준한 시적 관심과 일치하는 면이 있었다. 무엇보다도 이 편지를 받을 당시 릴케는 스위스의 하숙집에서 어느 가문의 연대기를 들춰보고, 그
연대기가 그 가문의 여성이나 어머니들, 또는 어린이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이 오직 유명해진 남성들의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는 것을 보고 깊이
실망하고 있었다. 그런 참에 리자 하이제는 또다시 ‘이해되지 못한 존재’, ‘잊혀지고 버려진 존재’로서의 여성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그의 앞에
나타났던 것이다.
1919년 7월에 시작된 릴케와 리자 하이제 사이의 편지 교환은 릴케의 1924년 5월
7일자 마지막 편지까지 드문드문 계속되었다. 이 시기는 제1차 세계대전의 패배로 독일제국이 멸망하고 혁명의 소용돌이를 거쳐 바이마르 공화국이
겨우 탄생했으나, 패전국으로서 막대한 배상 책임을 안고 극심한 궁핍과 혼란에 빠져 있던 시기였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리자 하이제는
몇몇 여인들과 힘을 합쳐 조그만 땅을 얻어 경작해 보려고 갖은 고생을 했다. 그러나 땅이 척박해서 생계유지에 도움이 안 될 정도로 소출이
형편없었고, 그나마 얼마 가지 않아 지주에게 그 땅마저 다시 내주고 쫓겨나게 되었으니, 그녀가 겪었을 생존의 불안과 고난은 너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릴케는 곤경에 처해 있는 리자 하이제를 매우 안타까운 마음으로 지켜보며, 그녀가 끝끝내 삶의
의욕을 잃지 않도록 위로와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가 마지막 편지에 첨부한 한 편의 시는 급하게 흘러가는 시냇가에 서 있는 한 송이 꽃을
묘사하고 있는데, 그것은 역경에 시달리는 리자 하이제의 모습을 비유한 것이며, 그 시내의 급류가 처음부터 꽃을 괴롭힐 의도가 없었음을 밝힘으로써
그녀 또한 역경을 원망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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