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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페라의 탄생

    1
    나유정(@tjsdlswkd1)
    2016-05-16 08:01:03




오페라의 탄생
 
오페라(opera)는 원래 opus(라틴 어로 ‘작품’이라는 의미)의 복 수 형으로,
초기에는 오페라를 ‘fabola in musica’ ‘dramma in musica’ 또는 ‘dramma per musica(음악극)’라고
불렀으나, 이후에 ‘opera in musica(음악작품)’로 불리다가, 이것이 생략되어 오페라가 된 것이다. 오페라는 일반 연극처럼
의상·무대장치·조명 등을 갖춘 무대극으로, 등장인물들은 노래와 연기를 통해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 이야기의 줄거리는 주로 환상적이거나 복잡하고,
사랑·미움·질투·복수 같은 아주 격정적인 감정들이 표현된다.
 
오페라는 작곡가와 대본가의 공동 합작으로 만들어지며, 대본은
‘리브레토(libretto)’(‘작은 책’이라는 의미)라고 부른다.
 
오페라의 탄생은 16세기 말 이탈리아의 문화적 상황과 상당히 관 계 가 깊다.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지인 피렌체에 거주하고 있던 폴리치아노( 1454~94)는 15세기 최고의 인문주의자로, 16세 때 이미 호메로스(기원전 8세기)의
〈일리아스〉를 라틴 어로 번역하여 출판하기 시작했다. 메디치 가의 로렌초 공작의 적극적인 후원을 받았던 폴리치아노는 공작의 궁정에 머물면서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 대한 풍부한 지식을 바탕으로 시와 극을 썼다.
 
비단 폴리치아노뿐만 아니라, 그 당시의 문인들은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아 고대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특히 극작가들은 고대 그리스 비극이야말로 자신들의 극음악이 모방해야 할 모델이라고 보아, 그리스 신화 속에서 많은 소재를
발견했다. 그러나 그리스 극에서 음악이 차지했던 역할에 대해서는 당시의 학자들 간에도 의견차이를 보여, 합창만이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과, 극
전체의 가사들이 모두 노래로 불려졌다는 주장이 있었다. 극 전체가 노래되었다는 주장은 다수의 그리스 비극을 편집했던 피렌체의 학자인 메이의
견해이기도 했다. 메이의 연구 결과는 서신교환을 통해 카메라타 멤버들에게 전해졌고, 이것이 바로크 시대 모노디 양식의 태동과 오페라 탄생의 시
발 점 이 되었다.
 
카메라타의 멤버들이었던 작곡가이자 가수인 페리와 카치니, 그리고 시인인 리누치니가 모노디
양식으로 된 음악극(dramma per musica)을 시도했다. 직접적인 결과는 최초의 오페라들이라고 할 수 있는 ‘다프네(Dafne)’와
‘에우리디케’의 탄생이었다. ‘다프네’는 갈릴레이의 후원자이기도 했던 피렌체의 코르시 백작(1561~1602)과 페리의 공동합작으로 작곡된
것이며, 이것은 극 전체에 음악이 붙여진 최초의 오페라로, 1598년에 코르시 백작의 궁정에서 초연되었다. 이 오페라에서 페리는 아폴론 역을
맡았다고 전해지는데, 불행히도 현재는 대본과 악보의 극히 일부분만이 남아 있다.
 
현존하는 것으로 최초의 오페라는 역시 리누치니 대본에 페리와 카치니가 함께 음악을 붙였던
‘에우리디케’이다. ‘에우리디케’는 1600년 프랑스 왕 앙리 4세(1589~1610 재위)와 메디치 가의 마리의 결혼 축제행사에 상연되었다.
원래는 페리 혼자 맡아서 작곡했던 작품이었다. 그러나 페리는 이 공연에 카치니의 제자들을 출연시켜야 했고, 카치니는 자신의 제자들이 맡은 역들은
자신이 작곡해야만 한다고 고집해 함께 참여하게 된 것이었다. 다음해에 페리와 카치니는 각자 독자적으로 작곡한 〈에우리디케〉를 출판했다.
 
페리는 만족스러운 극적인 양식을 모색하던 끝에 레치타티보 양식이라는 새로운 양식을
개발해냈다. 레치타티보 양식은 변화가 적고, 말의 흐름에 따라 불협화음도 필수적으로 나오며, 리듬은 가사의 리듬을 따른다. 또한 이 선율은
간략한 숫자저음 반주에 맞추어 불려졌다.
 
오페라의 탄생 이후 가장 중요한 첫 오페라는 몬테베르디( 1567~1643)의
‘오르페오’이다. ‘오르페오’는 몬테베르디가 만토바의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당시, 공작의 결혼식을 축하하는 행사의 일환으로 공연되었던 작품이다.
대본은 몬테베르디와 함께 만토바 궁정에 고용되어 있던 시인 스트리조 1573~1630)가 쓴 것으로, 원래 오르페오(그리스 어로는 오르페우스)
신화는 비극적인 종말로 끝나지만, 이 오페라가 축복받는 신부와 신랑을 위해 작곡된만큼 해피엔딩으로 끝나도록 각색되었다. 몇몇 예외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시작된 해피엔딩은 거의 관습화되어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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