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놓았거나 놓쳤거나 [ 천양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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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05-20 08:17:58
놓았거나 놓쳤거나 [ 천양희 ]
내가 속해 있는 대낮의 시간
한밤의 시간보다 어두울 때가 있다
어떤 날은 어안이 벙벙한 어처구니가 되고
어떤 날은 너무 많은 나를 삼켜 배부른 때도 있다
나는 때때로 편재해 있고
나는 때때로 부재해 있다
세상에 확실한 무엇이 있다고 믿는 것만큼
확실한 오류는 없다고 생각한지 오래다
불꽃도 타오를 때 불의 꽃이 와서
지나가는 빗소리에 깨는 일이 잦다
고독이란 비를 바라보며 십 는 생각인가
결혼에 실패한 것이 아니라 이혼에 성공한 것이라던
어느 여성작가의 당당한 말이
좋은 비는 때를 알고 내린다고 내게 중얼거린다
삶은 고질병이 아니라
고칠병이란 생각이 든다
절대로 잘못한 적 없는 사람은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사람뿐이다
물에도 결이 있고 침묵에도 파문이 있다는 걸 미리 알았더라면
사람이 무서운 건 마음이 있어서란 것도 미리 알았을 것이다
언제부터였나
시간의 넝쿨이 나이의 담을 넘고 있다
누군가가 되지 못해 누구나가 되어
인생을 풍문 듣듯 산다는 건 슬픈 일이지
돌아보니 허물이 허울만큼 클 때도 있었다
놓았거나 놓친만큼 큰 공백이 있을까
손가락으로 그걸 눌러
나는 마침내 완전히 나를 쓰고야 말겠다
천양희
1942년 부유한 집안의 7남매 중 막내로 태어난 천양희는 시와 창 을 즐기던 아버지와
재가불자(在家佛子)였던 할아버지의 영향을 받았다. 시인이 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학창시절 학교사정으로 예술제에는 참가하지 못했으나 늘 혼자서
시를 써서 낭송하곤 했다. 1962년 경남여고를 졸업하였으나 알 수 없는 병으로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있다가 국가고시를 치른 뒤 이화여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1965년 《현대문학》에 박두진의 추천으로 《정원(庭園) 한때》《화음(和音)》《아침》을 발표, 등단했다. 작품 《마음의
수수밭》을 통해 진솔하고 가식 없이 표현하여 많은 독자와 시적 공감대를 형성했다. 소월시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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