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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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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05-27 06:13:59
Queen
60년대 햄프튼 글래머 스쿨에 다니던 브라이언 메이가 팀 스타펠을 보컬리스트로 하여 1984
란 그룹을 결성, 4년간의 소규모적인 활동을 벌이다가 각기 대학진학으로 해산했으나 그 후에 프레디 머큐리를 새로 가입시켜 Smile이란 이름의
그룹을 결성, 이때에 브라이언은 광고를 붙여 로저 메도우스 테일러를 드러머로 구하게 되면서 스타펠이 탈퇴, 70년 8월 프레디, 로저, 브라이언
세 명이 모여 그룹 Queen을 만들게 되었다.
다른 아티스트들의 고난 속에서의 데뷔와는 달리 여유있고 화려하게 데뷔를 하게 되는
Queen은 핵심이 되는 멤버 프레디와 브라이언이 곡을 만들게 되는데 그들의 음악적 스타일은 멜로디 라인이 강하고 자극적이어서 특이한 자신들의
개성을 잘 나타내 주고 있다. 특히 프레디는 작곡 솜씨가 뛰어나고 4옥타브의 넓은 음역과 이색적이고 인상적인 스테이지 매너로 후에 Queen의
간판스타로 부상하게 됐다.
이때까지 베이시스트는 세션맨을 고용하다가 71년 2월, 오디션을 통하여 당시 전자공학 교사로
있던 존 디콘을 베이스주자로 맞아 들였다. 그들의 첫 데뷔 앨범과 싱글이 나온 것은 73년 7월의 일로서 앨범 「Queen」과 3집
<Killer Queen>을 발표하게 되는데 이것은 당시 엔지니어인 로이 토마스 베이커와 프로듀서인 존 앤소니의 협조로 레코딩된 것이다. 이
데뷔 싱글은 74년 디스크지의 인기투표에서 프레디 머큐리를 아이버 노벨로 상을 획득하게 했다. 이들의 라이브 스테이지는 73년 11월 12일부터
3일간 이언 헌터의 록 그룹인 Mott The Hoople의 오프닝 밴드로 참여하면서부터 시작됐다.
74년 2월 두 번째 앨범인 「Queen Ⅱ」를 발표, 이때부터 본격적인 프로 활동이
이뤄지게 됐으며, 3월 한달 동안을 이언 헌터와 영국과 미국 전지역을 순회공연하면서 이들은 인기상승에 기반을 닦게 되었다. 그리고 「Queen
Ⅱ」 앨범은 74년 9월 5일 프랑스의 카페 로열에서 실버 디스크상을 수상했으며, 이해 10월부터 세 번째 영국 순회공연을 가져 라이브
스테이지를 많이 갖는 팀으로 알려지게 됐다.
11월말 제3집 앨범인 「Sheer Heart Attack」을 내놓고 동양으로 시선을 돌려
75년 4월 19일부터 5월 1일까지 일본에서의 첫 공연이자 동양권에서의 첫 무대를 꾸미면서 7월에 4집 디스크 준비를 위해 릿지 농장에서
리허설을 가진 후 런던에 있는 스콜피오 스튜디오에서 레코딩에 착수했다. 이때부터 이들은 자신들의 독립된 스튜디오에 대한 필요성을 느껴 Queen
Production과 Queen Music 등 두 개의 회사를 설립하여 이들이 활동하는 근거지 역할을 하게 된다.
같은 해 11월, 네 번째 영국공연을 가지면서 「A Night At The Opera」를
발표하는데 이 앨범은 특히 브라이언 메이가 거의 모든 악기를 연주하여 평론가들에게서 재즈 밴드 효과를 내는 메카트니스타일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들이 본격적인 미국 시장에의 진출을 꾀하는 계기가 된 76년, New-York에서 이언 헌터의 솔로 앨범 「All American
Alien Boy」의 제작에 참여하고는 76년 1월 27일 부터 약 3개월간 전미국 순회 공연을 가진 것에 힘입어 New Musical
Express지의 인기투표에서 브리티쉬 스테이지 밴드 부분에 1위를 차지 하였고 싱글 <Bohemian Rhapsody>가 역시 베스트 싱글
1위에 레코드 밀러지와 디스크지에서도 역시 1위의 싱글로 뽑혀 프레디에게 두 번째 아이버 노벨로상이 수여되기에 이르렀으며, 76년말 출반되는
6집 「A Day At The Races」 역시 앞서 낸 디스크와 마찬가지로 히트가 되어 이들의 디스크는 출반만 되면 히트가 되는 행운의
그룹으로 인식이 되어 버렸다.
77년 들어 신년 벽두부터 북미 순회공연을 한 후 곧바로 또 영국 공연에 나서자 다른
아티스트들은 그들의 쉴새 없는 순회공연에 놀라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78년 들어서 그들은 자체의 사업성을 띤 메니지먼트 회사를 설립하고
사업에 열중하느라 약간의 공백기가 생겼으나 11월부터는 「Jazz」 앨범을 발표하고 다시 미국 순회공연에 나서는 등 자기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해가 바뀌면서 3개월간의 유럽 전역을 도는 공연을 실시하고 80년에는 그들 그룹 최초로 시도해보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앨범을 제작하게
된다. SF영화인 「Flash Gordon」의 음악은 상당한 수준의 예술성을 띠고 있어 많은 평론가나 매스컴으로부터 찬사를 받기도
하였다.
81년 들어서자 American Music Award에서 싱글 <Another One
Bites The Dust>가 최우수 싱글을 수상하고 처음으로 남미 공연을 갖는다. 이후부터 이들은 우주시대를 소재로 쓴 곡들이 많이 보이고
있으며, 로저 테일러는 「Fun In Space」란 솔로 앨범까지 내놓으면서 여유를 보이기도 했다. 한편 81년 6월에는 처음으로 데이빗 보위와
합작으로 10집 「Under Pressure」는 파리와 뮌헨의 두 군데 스튜디오를 왕래하면서 발표하고 뒤이어 두 번째 남미 공연을 대 성황속에
마쳤다. 11월에 그들의 히트곡 모음집인 「Queen Greatest Hits」 앨범을 팀 결성 10주년 기념으로 내놓았다.
82년 봄 13번째 앨범 「Hot Space」를 발표했는데 이 앨범은 차트 등장 5주만인
6월 26일자 빌보드 앨범 차트 22위에 랭크되었고, 싱글 커트된 <Body Language> 역시 차트 등장 9주만인 같은 날짜 히트 차트
11위에 랭크되었다. 데뷔 때부터 화려하게 출발하여 발표하는 디스크마다 히트의 행렬이 줄을 잇고, 연속되는 라이브 스테이지로 이들은 짧은 시일에
쉽게 세계의 스타덤에 오른 드문 경우이며, 팀 구성멤버가 모두 학사출신인 엘리트들로서 특히 브라이언은 지금도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정도로 모든 방면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세계적인 슈퍼 그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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