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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턴 버얼 [ Milton Berle ]

    1
    나유정(@tjsdlswkd1)
    2016-05-30 08:48:20







밀턴 버얼  [ Milton Berle ]
 
현재 어떤 존재가 될 수 없다면 나는 될 수 있을 법한 존재가 되련다. 될 수 있을
법한 존재란 별을 향해 뻗어나가는 '아마도'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가 됐을 뻔 했던' 사람보다는 '-이었던' 사람이 되겠다.
'됐을 뻔 했던' 사람은 한 번도 그 존재가 돼 보지 못했으나 '-이었던' 사람은 한
때 그 존재로 살아봤기 때문이다.
 
미국 텔레비전 황금기의 동의어로 밀튼 버얼만큼 적합한 이는 없을 것이다. 그 시대는 그에게
'미스터 텔레비전'이라는 별명까지 안겨주었다. 세일즈맨의 아들로 태어난 버얼은 1913년에 닮은꼴 찾기 대회에서 찰리 채플린 흉내로 입상하면서
무대에 대한 야망을 키우게 된다. 그는 학교 연극에도 출연했고 브로드웨이 무대에도 진출했다. 「생득권(1920)」과 「쾌걸 조로(1920)」
같은 초기 무성 영화 여러 편에 아역 배우로 출연한 그의 이름을 알린 것은 초창기 라디오에서였다. 1940년대 말 버얼은 자신의 라디오
버라이어티 쇼를 진행하고 있었다.
 
그러나 '엉클 밀티'를 온 국민에게 친숙한 인물로 만든 것은 바로 버얼의 '텍사코 스타
씨어터'를 ABC에서 라디오 쇼가 계속 진행되던 당시인 1948년 텔레비전으로 옮긴 NBC였다. 이 성공 덕에 버얼은 1951년에 NBC와 전례
없는 30년간 계약을 맺었다. 1948년부터 50년대 초까지 버얼은 화요일 밤을 장악하고 있었다. 이때 레스토랑들은 밤 8시와 9시 사이에 문을
닫았고 9시가 넘으면 텔레비전에 집중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동시에 화장실로 달려가느라 저수지 수위가 급강하한다는 소문이 돌 정도였다.
 
버얼은 또 쇼의 재미를 위한 노력의 일환인 여장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데, 그가 여자를 아주
좋아했다는 점이나 다섯 번이나 결혼(두 번은 조이스 매튜스와)했던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1953년부터 재미가
떨어지기 시작했고 스폰서들이 연이어 바뀌고 시청률이 떨어지자 방송국이 다른 가능성 있는 프로그램으로 눈을 돌리기 시작하면서 1956년 버얼은
마침내 '밀튼 버얼 쇼(텍사코 스타 씨어터)'를 그만둬야만 했다. 1960년대부터 20세기말까지 그는 「매드 매드 대소동(1963)」과
「오스카(1966)」 등 많은 영화에 주로 카메오로 출연했다. 또 그는 수십 편의 다른 텔레비전 시리즈에도 고정으로 출연했다.
 
"앞으로 뚫고 나가겠다는 열망을 계속 유지해야만 합니다. 성공은 아주 긴 길거리
싸움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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