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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 우찬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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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10-10 09:47:02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 우찬제 ]
어린 시절 우리 집 거실에 걸려 있던 액자 중 하나가 푸시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였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하지 말라/ 슬픈 날엔 참고 견디라/ 즐거운 날이
오고야 말리니
이렇게 시작되는 시를 보면서 궁벽한 농촌에서의 아득한 나날을 견디곤 했던 풍경이 떠오른다.
미래의 희망을 그려 볼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미래에 사는 법/ 현재는 언제나 슬픈 법’ 이란 구절에 기대어 턱없는
낙관을 하기도 했었다. 푸시킨이 누군지는 몰랐지만, 절망스런 날을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 것이라고 했으므로, 그것을 믿는 쪽이 이로울
것이라는 계산이 한몫했는지도 모른다.
푸시킨은 귀족 출신이었지만 진보적인 사상을 가지고 농노제하의 러시아 현실을 예각적으로
직시하면서 깊은 사상적 경지를 보여 주었다. 그의 시는 고단한 민중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 물론 지배자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미래의 희망을 위해 현재의 쾌락을 유예하고 고통을 지불할 것을 종용하는 이데올로기로 치환될 수도 있겠기에 말이다. 실제로 개발도상국의 여러
지배자들이 그런 논리를 폈을 뿐만 아니라, 생산 사회의 중심 논리이기도 했다.
1970년대 우리 사회도 그랬다. 경제 개발 과정에서 여전히 그런 생각은 우세종이었다.
나름의 성취를 이룬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 이청준은 [당신들의 천국]에서 ‘내일의 꿈을 오늘 미리 가불해 주고, 그 가상의 현실을
당장 오늘의 그것으로 착각하고 즐기게 하여 진짜 현실의 갈등을 잠재워 버리는 말의 요술’일 수 있음을 예리하게 지적했다. 물론 푸시킨의 시적
의도가 악용되는 다른 맥락을 비판하려 한 것이었다. 내일도 중요하지만 오늘의 삶도 무척 중요하다는 것.
그렇다. 내일에의 희망을 소거해서도 안 되지만, 그렇다고 오늘의 삶이 내일을 위한 준비로만
점철되는 것 또한 곤란하다. 누군가 그랬다. 현재는 선물이다!(Present is a present!) 물론 푸시킨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 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 자유로운 영혼들이여, 오늘 우리 행복하자. 그렇다고 내일을 위한 한 그루
사과나무를 심지 말자는 얘기는 결코 아니다. 오늘도 행복하고 내일도 행복하면 좋지 않겠는가. 그 비결은 멀리 있지 않다. 바로 지금 우리 안에
있다.
우찬제
1987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 평론집으로 [욕망의 시학], [상처와 상징],
[타자의 목소리], [고독한 공생], [프로테우스의 탈주] 등이 있음. 팔봉비평문학상, 김환태평론문학상, 소천비평문학상 등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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