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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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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11-10 09:16:12
체 게바라
어른이 되었을 때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 되도록 준비하여라. 이 말은 네 나이에는 많이
배워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단다. 정의를 지지할 수 있도록 준비하여라. 나는 네 나이에 그러지를 못했단다. 그 시대에는 인간의 적이 인간이었다.
하지만 지금 네게는 다른 시대를 살 권리가 있다. 그러니 시대에 걸맞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프랑스의 실존주의 철학의 대가인 사르트르는 체 게바라를 ‘20세기 가장 완전한 인간’이라고
극찬했다. 1928년에 태어나 1967년에 39세로 죽은 체게바라는 살아 있었을 때도 쿠바와 남미에서는 유명한 인물이었지만, 사후 그가 생존
했던 기간보다 더 오랜 기간, 살아 있을 때보다 더 많이 유명해진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 ‘68운동’ 당시 영웅으로 추대받았고 이후 40년
이상이 지난 지금까지도 다양한 측면에서 재조명되고 소비되고 있다.
특히 그가 보여준 현실의 안락과 권력에 안주하지 않고 신념에 따라 행동하고 죽어간 삶의
궤적은 이후 진보적인 젊은이들이 그를 멘토로 삼기에 주저치 않게 하였고 그의 참혹한 죽음은 ‘전사 그리스도’ 란 별명을 붙이게까지 했다. 이런
인기 때문일까. 체 게바라는 혁명의 나라에서뿐만 아니라 그가 가장 경계했던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있는 미국에서조차 가장 뜨겁게 인기있는 인물로
소비되고 있다. 혹자는 ‘혁명도 사회주의도 사라진 지금 오로지 체 게바라만 살아 남았다’고 할 정도로 체 게바라는 이념과 국가를 떠나 전설의
혁명가로 살아 남아 있다.
알베르토 코르다가 찍은 그의 얼굴 사진은 붉은 티셔츠에 프린팅되어 반항기 어린 10대와
20대의 가슴팍을 장식하고, 그의 이름이 들어간 시계, 심지어 맥주까지 나오면서 ‘체 게바라’라는 이름은 이제 남미의 혁명가가 아니라,
젊은이라면 한번쯤 눈 돌려 관심을 가져보고 싶은 하나의 아이콘 쯤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살아있었던 인물 자체보다도 하나의 상징으로 남아 버린 체 게바라이지만 그 상징이 전
세계 사람들로부터 이토록 사랑을 받게 된 데에는 인간 체 게바라의 삶 자체가 가진 준엄함과 숭고함이 있었기 때문인 것도 사실이다. 20세기 초
남미 민중의 비참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체 게바라는 안락한 지위를 버렸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신념 앞에 누구보다 순정했으며, 이를 지키기 위해
자신에게 가장 엄격했던 사람이었다.
체 게바라의 본명은 에르네스토 라파엘 게바라 데 라 세르나(Ernesto Rafael
Guevara de la Serna)이다. 체 게바라란 이름에서 체(che)는 스페인어로 사람을 부를 때 쓰는 ‘어이’ ‘이봐’ 정도의 의미를
지난 말로 체 게바라가 혁명에 뛰어들면서 스스로 이름을 이렇게 고쳤다고 한다.
체 게바라는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중상류층 백인 가정 출신이다. 1930년대 아르헨티나는
세계 경제순위 7위를 할 정도로 부유한 나라였고 남미에서 가장 잘 살았다. 하지만 이 풍요는 아르헨티나의 백인 상류층들이 구가하는 것이었고
대부분의 남미 민중들과 비슷하게 아르헨티나의 노동자와 농민들은 가난에 허덕이고 있었다. 체 게바라의 양친은 바스크와 아일랜드계의 백인으로 남미
대부분의 국가에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톨릭을 믿고 있는데 반해 그의 어머니는 무신론자였다고 한다.
종교에 얽매이지 않는 비교적 자유로운 분위기와 안정된 경제적 환경속에서 체 게바라는 5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는 미숙아로 태어난 데다 2살 무렵 극심한 폐렴을 앓은 탓에 평생 매우 중증의 천식을 지병으로 가지고 살았다. 체
게바라의 양친은 몸이 약한 아들을 위해 천식 치료에 좋은 곳으로 몇 번이나 이사를 할 정도로 장남 체 게바라에게 정성을 쏟았다. 천식으로
호흡곤란이 와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기고 늘 산소 흡입기를 소지해야만 했지만 체 게바라는 좌절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럭비나 수영 등 힘든
운동을 하면서 자신의 지병을 조절해갔다.
스물다섯 살에 의학박사학위를 딴 후 의사로서의 안정된 삶이 기다리고 있었지만 체 게바라는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아르헨티나를 떠나 진보정권을 이루어 자유로운 분위기가 가득하던 과테말라로 옮겨갔다. 이곳에서 체 게바라는 자신의 삶에 있어
두 가지 큰 변화를 맞는다.
하나는 페루에서 학생운동을 벌이다가 과테말라로 망명 온 3살 연상의 여성 혁명가 일다
가데아를 만나 결혼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민주 선거로 이룬 과테말라의 아루벤스 진보정권이 미국자본의 지원을 받은 아르마스의 쿠데타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목격한 것이다. 이 사건으로 체 게바라는 비폭력적 개혁은 한낮 꿈일 뿐, 남미 민중을 위한 진정한 혁명은 무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을 바꾸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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