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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와 죽음 [ 호프만스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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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유정(@tjsdlswkd1)2016-12-11 02:13:32
바보와 죽음 [ 호프만스탈 ]
저녁, 주인공 클라우디오는 산꼭대기에 마지막 빛을 던지는 놀을 보며 독백한다. "대체 나는
인생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는가. 분명히 나는 인생 속에 처하기는 했으나 방관자에 지나지 않았다. 때로는 행복을 맛보기도 했으나, 참다운
기쁨이나 슬픔을 맛본 적은 없었다. 인공적인 것에 붙들려 왔고, 인생의 절반도 아직 이해하지 못한다. 나는 그림자에 불과하다." 어둠이 짙어짐에
따라 마당 곳곳에서 고대풍의 옷을 입은 이상한 사람들이 나타나고, 뒤이어 '죽음'이 등장하여 클라우디오와 대화를 나눈다.
그는 자신의 생에 관해 후회하며, 다시금 새로운 삶을 살기 위해 '죽음'에게 좀 더 살게
해주기를 요청한다. '죽음'은 이 세상을 떠남에 있어 한 번뿐인 인생을 귀히 여겨야 할 이유를 가르쳐 주라고 한다. 우선 '죽음'이 연주하는
바이올린 소리에 따라 클라우디오의 어머니가 나타나 그에게 말한다.
어머니의 말에 의하면, 슬픔이 3분의 1이었고 나머지는 걱정과 괴로움뿐이었으나, 고통의
느낌이야말로 이 세상의 깊은 비밀로 연결되는 어머니의 마음이라고 한다. 클라우디오는 어머니와 더불어 있는 것이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라고
후회하지만 이미 때는 늦은 것이었다.
뒤이어 그가 버린 아가씨가 나타나 잠시 동안이기는 했으나 그와 사랑했던 즐거웠던 나날과
그에게서 버림받은 슬픔을 말하는 것이다. 그 뒤를 이어 자기 애인까지 그에게 빼앗겼던 친구가 나타나, 클라우디오처럼 살아 있기보다는 자기는 이미
죽었지만 그 편이 더 보람 있는 일이라고 그에게 말한다. 클라우디오는 그 말에 긍정했다. 그리고는 다음과 같이, 마치 연기력이 형편없는 배우가
아무 감정도 없이 대사를 내뱉듯 말하고 나서는 그만 쓰러져 버린다.
"꿈을 꾼 사람은 넘치는 듯한 꿈의 느낌에 눈을 뜨는
법이지만, 나는 지금 감정에 넘치면서 삶의 꿈으로부터 죽음을 향해 눈을 뜨는 것이다."
[ Hugo von Hofmannsthal ]
오스트리아의 시인, 극작가, 소설가, 평론가. 신낭만주의에서 출발하여 슈니츨러와 함께 '젊은
빈(Bein) 파'의 일원이었다. 10대에 벌써 가명으로 희곡 〈어제〉(1891)를 비롯해 다수의 시, 날카로운 지성의 섬광을 드러내는 평론을
발표함으로써 화제가 되었다. 빈 대학에 입학한 1892년에는 게오르게와 함께 〈예술 회보〉 창간호부터 간여하기 시작해 이 잡지에 희곡 〈티치안의
죽음〉(1892)과 〈이른 봄〉, 〈3행시〉 등 주옥 같은 서정시를 기고했다.
그의 희곡, 즉 앞서의 것들을 포함해 〈바보와 죽음〉(1893), 〈세계의
소극〉(1897), 〈흰 부채〉(1898), 〈창가의 여인〉(1898), 〈모험가와 여가수〉(1899), 〈조바이데의 결혼식〉(1899)등은 그
스스로 '소희곡'이라 이름붙인 것과 같이 짧은 운문 형식이었다. 존재와 생성, 정지와 방랑, 확보와 상실의 이율배반 속에서 참다운 삶의 길을
발견하려는 것이 주내용이었으므로 극적 구성은 없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연출가이며 디자이너인 막스 라인하르트와 함께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창설했고, 거기에서 그의 작품 〈누구라도〉(1911)와 〈잘츠부르크 대(大) 세계극〉(1922)을 정기적으로 공연했다. 전쟁 이후 유럽 문명의
위기와 분열에 대한 그의 성찰은 정치극 〈탑〉(1925) 및 서양 문명의 미래를 예언하는 몇몇 수필에 잘 나타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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